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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인간

2025.11.28.7 min read

걱정하는 인간

이른 아침 밀린 집안일을 하며 여러 걱정 거리(부모님 건강 걱정, 새롭게 취업하게 될 직장에 대한 적응 걱정 등)에 사로 잡힌다. 여러 걱정 거리들을 생각하다보면 우울감에 빠져들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 거리는 늘어나는 것 같다. 부모님 건강, 노후 걱정, 내 건강, 노후 걱정, 일자리 걱정, 자식이 생긴다면 자식 걱정 등등… 그 때마다 니체나 아들러의 말처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보다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자라는 말을 되뇌이곤 한다. 그러다 문득 왜 인간은 애초에 현재만을 충실하게 살도록 설계 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도록 설계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는 미래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다. 의문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어서 AI에게 질문해봤다. 다음은 AI의 답변이다. 답변을 정말 잘한다.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미래 걱정은 실은 생존에 매우 유리한 특성이었어요. 우리 조상들에게 "내일 먹을 게 있을까?", "저 동물이 위험하진 않을까?" 같은 걱정은 생존율을 높였죠.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도구를 만들고, 식량을 저장하고, 계절 변화에 대비할 수 있었어요. 걱정 없이 현재만 사는 개체들은 도태되었을 거예요. 문제는 현대 환경이 너무 급격히 바뀌었다는 거예요. 우리 뇌는 여전히 사바나에서 맹수를 피하던 시절 설정으로 돌아가는데, 실제로는 취업, 노후, 관계 같은 추상적 불안들과 씨름하고 있죠.생존 위협은 거의 사라졌는데 불안 시스템은 과잉 작동하는 셈이에요. 니체와 아들러가 말한 "현재 충실함"은 사실 이 진화적 특성을 인지하고 조절하자는 거예요. 본능적 걱정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이 걱정이 실제로 유용한가?"를 판단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거죠.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걱정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걱정을 덜 해야겠다"는 선택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답변을 요약하자면 진화적 관점에서 매우 유리한 특성이지만, 현대에서는 직접적인 생존 위협은 거의 없지만 추상적 불안이 과도하게 많아져 우리의 불안 시스템이 과잉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충실함"에 대한 답변도 요약해보면 이 걱정을 했을 때 내 불안이 해소가 되는지를 검토해보고 아니라면 걱정을 덜 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새롭게 취업하게 될 직장에서의 직무 적응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면 불안해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무에 대한 공부를 추가적으로 하는 등의 현재에 충실한 노력을 통해서 미래의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미래를 낙관만 한다면 어떨까? 내가 아는 가장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을 한명 알고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다. 그는 "비관적이고 옳기보다 낙관적이고 틀린 편을 택하겠다"라는 트윗을 종종 게시하고는 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와 같은 사람도 항상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낙관적이기만 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윌터 아이작슨이 지필한 일론 머스크 전기를 보면 종종 미래를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포기를 모른다. 비관하더라도 끝까지 성공을 위해 실행한다. 미래를 비관하면서도 현재에 충실하고, 결국 현재에 충실했던 삶이 이전에 비관했던 것을 낙관할 수 있게 변화 시킨다.

걱정만 하는 인간 vs 대비하는 인간

걱정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걱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만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현재에 충실히 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